2024.04.20 (토)

  • 흐림서산 3.5℃
  • 대전 3.3℃
  • 홍성(예) 3.6℃
  • 흐림천안 2.7℃
  • 흐림보령 3.0℃
  • 흐림부여 3.0℃
  • 흐림금산 4.4℃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칼럼] 공짜공연과 무상복지

URL복사

아직 공짜공연이 대세인 서천에서 모처럼 유료공연이 있었다. 1만원의 입장료가 미안해질 정도로 공연은 훌륭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관객의 대부분은 노인과 아이들이었다. 무료초대권이 많이 뿌려진 듯했다. 객석은 어수선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계속 터졌다. 스탭들은 공연 중에도 무대 주변을 들락거렸다.

나는 공짜 공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멋진 공연도 공짜가 되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공연자도 실수나 빈약함에 대해 무감해진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은 괜히 생겨나지 않았다.

공짜공연에 익숙해진 공연자는 재주꾼에 지나지 않는다. 관객은 일 없는 사람들로 머릿수만 채운 박수부대가 된다. 공짜공연의 일상화는 무대와 객석의 질을 동반하락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 시도하는 ‘천원 콘서트’ 등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금액으로 알찬 공연을 즐기게 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성장단계의 공연단체에게 무대를 마련해주는 기회가 되고 주민들은 폭넓은 문화예술을 자기 판단으로 구매하는 소중한 경험을 쌓게 된다.

사회복지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무상복지는 국가재정을 좀먹고 수혜자의 사회의식을 비뚤어지게 하는 망국병이 될 수 있다. 복지를 언제까지 시혜의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지도 의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의 기틀을 최초로 정립한 영국의 비버리지는 사회보장의 원칙 중 하나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급여를 제시한 바 있다. 정부가 책임지되 직접적인 개입은 최소화한다는 의미이다. 비버리지와 영국 정부가 우리보다 인색했던 것일까?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무상복지는 사회적 가치판단의 기준을 뒤틀어 놓는다. 2006년에 6세 미만 아동의 입원비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했었다. 출산율 제고 정책의 하나였는데, 엄마들은 아이가 기침만 해도 입원을 시켰다. 외래로 진료하면 돈을 내고, 입원하면 공짜였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진료비 급증을 견디지 못한 정부는 1년 8개월 만에 제도를 원점으로 돌려야 했다. 

어느 기초생활수급자는 무상으로 매일 파스를 처방받은 뒤 이를 모아 팔아서 돈벌이를 하는 사례가 적발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행동이 위법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선량한 국민을 파렴치한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나는 잘못된 복지제도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무상복지는 수혜자에게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 독약과 같다. 

호주에서는 기초생활대상자에게 조건부 급여를 적용한다고 들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봉사활동을 하게하고 이에 대한 확인서를 받는 식이다. 우리와는 근본적인 철학이 다르다. 일방적 시혜가 아닌 것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을 공동체로 보고 제각기 사회에 기여토록 하는 것이 우리의 처방과 다른 점이다. 

우리의 복지제도는 비버리지의 정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필요한 최소한의 보장이 그것이다. 건강과 재산을 잃고 이를 보완할 수단이 없는 자에게만 선별적으로 무상복지를 주고 그 외에는 능력에 따라 봉사활동이나 천원콘서트 등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이 수혜자에 대한 올바른 예의이며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복지를 물질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수혜자는 거지가 아니다. 능력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막연한 무상복지는 사회적 무임승차자를 양산한다. 비용을 부담하는 층에게는 고통이 되고 수혜자는 받는 것에 길들여진다. 사회계층을 편 가르고 불신과 마찰의 요인이 된다.

유상이든 무상이든 진정한 복지란 정신적으로 개인의 자존감을 유지하며 사회적으로는 생존과 자활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직접적 도움보다는 간접적 지원이 어렵지만 훨씬 인간적이다. 이에 대한 진지한 피드백과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건강한 사회에서 이웃과 어우러지는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포토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