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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배, 가슴, 머리를 위한 3가지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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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부자 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간다. 나는 아직 부자가 아니므로 괜찮은 인사말이다.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삶이 초라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재산은 필요하다. 재산이 재물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알더퍼는 인간의 욕구를 생존과 인정, 성장의 3가지로 분석했다. 이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원하는 3가지 재산이 있다. 그것들은 배와 가슴과 머리를 위한 재산이다.

그 첫 번째는 배를 위한 재산이다. 유감스럽지만 그것은 돈이다. 돈이 있으면 배짱이 는다. 소인도 부자가 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사마천은 말했다. 이는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사회적 능력을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갤브레이스가 정의한 것처럼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므로 적어도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현재와 노후를 염려하지 않을 정도의 돈은 꼭 필요하다. 특히 노후가 불확실한 상태에서의 삶은 늘 긴장 속에 과도해지게 마련이다. 

노후보장이 확실한 유럽의 젊은이들은 일 년 모은 돈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재산으로서의 돈이란 저축을 뜻한다. 돈의 가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다. 저축을 하면 배가 든든해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미래를 가질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슴을 위한 재산은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란 가슴을 열고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인연을 잇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지도교수님은 ‘돈이 재산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재산’이라 가르쳤다. 졸업 후에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피천득은 ‘인연’이란 시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읊었다.

더 많이 주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삶이 그래서 필요하다. 인생이란 먼 길을 가는 것. 길게 보면 인간관계는 주는 것이 남는 것이다. 특히 친인척과 친구들은 죽는 날까지 함께 할 사람들이므로 결코 소홀할 수 없다.

세 번째로 머리를 위한 재산은 지혜를 뜻한다. 내 아버지는 황해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의 착취 속에서 청년시절을 보냈다. 여느 아버지들처럼 내게 공부를 독려했다. ‘품에 있는 돈은 잃어버릴 수 있지만 머릿속에 든 것은 아무도 빼앗지 못한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높은 이유는 평생 학생으로 살다가 죽어서 신위에도 학생임을 밝혔던 유구한 선비문화의 전통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끝없는 착취의 역사 속에서 민중의 삶에 체화된 각자도생의 방편이 교육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교육이 지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식은 외부에서 들어오지만 지혜는 그것이 머릿속에서 단련된 후에 생겨난다. 그래서 지식이 넘쳐도 지혜는 부족하기 쉽다. 우리 아이들이 창의력을 기르지 못하는 원인은 주입식 교육 때문만이 아니다. 사지선다형 시험제도가 머리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 틀을 깨는 방법은 간단하다. 진지하게 질문하는 것이다. 자연에게, 책에게, 현자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열망을 갖고 그에 대한 해답을 궁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배우고 반성한다. 삶은 균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간다.

치매에 걸려 요양시설에서 가끔 자손의 방문을 받는, 그러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노인의 삶은 정지된 것이다. 근심걱정이 없다는 면에서 어쩌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다만 생존하는 것이다. 오랜 생존을 오랜 인생이라 말할 수는 없다.

돈과 인간관계는 삶의 두 축이다. 그러나 지혜가 없다면 무의미해진다. 인간을 인간답게,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것이 진정한 재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오늘의 나는 어떤 의미였는가? 세상은 어떻게 새로워지고 있는가? 우리가 그저 생존한 것이 아니라면 그 대답은 날마다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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