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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목기시대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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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를 도구를 기준으로 나눈다.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3시기법이 그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너무 단순해서 어쩐지 엉성해 보인다. 

이를테면 청동기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시기상으로 짧았고. 주로 의식용이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생략되기도 했다. 

인류문명에 끼친 영향력을 따지자면 플라스틱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합성물질도 청동기에 못지않은 혁명적 도구라 할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도구의 시대가 기계의 시대로 바뀌었고 이제는 정보의 시대가 되었으므로 19세기에 정립된 3시기법은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석기시대에 앞서 목기시대가 있었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도구는 아마도 나무 몽둥이였고 돌도끼보다는 목창으로 먼저 사냥했을 것이다. 

목기시대가 학설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배경은 입증할 유물이 없고 연대를 가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목기시대를 굳이 부정할 근거도 없을 것이다. 아득한 나의 선조가 최초로 생산한 물건은 나무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도시생활을 접고 산자락에 자리 잡으며 처음 가까이한 취미가 목공이다. 죽은 나무를 다듬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무에서 유를 낳는 일이기도 하다. 어설픈 목수인 나는 나무를 깎고 붙이는 일에 비효율적으로 궁리를 거듭한다. 때로는 하루 종일 붙였다 떼었다 한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긴장한 세포는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내게는 목기시대의 피가 유전되고 있었다.

목공은 머리와 손을 함께 써야하는 균형 잡힌 일이다. 목수는 숙련된 기술자이자 디자이너이고 예술가이며 무엇보다 창조자이다.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인 까닭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고향으로 향하듯 나는 철기시대에 태어났으나 목기시대로 귀환하기로 기꺼이 작정했다.

지난겨울 창고 처마 아래 펼쳐놓은 공방으로 출퇴근을 했다. 찬바람이 호전적으로 불고 먹이를 구하는 산비둘기처럼 가끔 눈발이 날렸으므로 장갑을 3겹으로 끼었다. 빙하기를 견뎌야했던 목기시대의 인류를 생각하면 서천의 겨울은 봄날이었다.

대패질로 생긴 톱밥은 장작불 붙이는데 요긴하게 썼다. 자투리 나무토막들도 그 일에 동참했다. 톱밥과 자투리를 뺀 나머지로 침대 옆에 놓을 작은 탁자를 만들었다. 탁자들은 태어나자마자 누군가 집어갔다. 5개의 탁자를 만드느라 겨울이 갔다. 그래도 남은 게 없다. 봄에도 탁자를 계속 만들어야하나 고심한다.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나는 호모 우드쿠스이다.

취미가 없는 삶은 건조하다. 취미는 의무가 아니므로 본연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생존을 위해 생업이 필요하듯 우리는 취미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한다. 좋은 취미일수록 경지에 이르려면 여러 단계를 거친다. 오랜 시간과 몰입은 수도자처럼 심신을 단련시킨다.

공자는 즐기는 자가 최고라 했지만 즐거움에 창의성이 더해지면 차원이 달라진다. 남이 만든 쉬운 길에는 아류의 함정이 도사린다. 그 함정에는 권태가 기다린다. 

창의성이야말로 인간을 시험하며 스스로 주인이 되게 해준다. 그 단계마저 넘어서면 예술을 만난다. 취미가 예술로 승화되면 그의 영혼은 순간순간 빛날 것이다.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정글에서 살고 있다. 사회는 우리에게 전력을 다하도록 요구한다. 절박해진 삶은 방법론으로만 채워진다. 피폐해져가는 우리의 영혼은 치유되어야 한다. 종교나 사랑, 어떤 이에게는 술도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취미는 어떠한 보상도 전제하지 않는다. 희생을 바라지도 않는다. 오직 스스로 흡족할 뿐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더라도 내가 만드는 탁자는 여전히 투박할 수 있다. 그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영혼과 함께 걷기 때문이다. 그 길은 완만하게 나를 부활시킨다. 경쟁과 욕망에 휩쓸려 매몰되어가는 현대인의 영혼은 취미를 통해 충전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하비쿠스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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